빗물이 마당에 길을 내던 날
비가 그친 뒤에도 마당 한쪽은 한동안 젖은 채로 남아 있었다. 처마 끝에서 떨어진 물이 흙바닥을 얕게 파고, 그 자리에 탁한 물이 길쭉하게 고여 있었다. 처음에는 비가 많이 왔으니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한참 지나 다시 나가 보아도 물 높이가 거의 줄지 않았다. 장화를 신고 가장자리를 밟자 검은 진흙이 발등 가까이 밀려 올라왔고, 안쪽에서는 갇혀 있던 공기가 둔한 소리를 내며 터졌다. 배수구까지 이어져야 할 물길은 중간에서 흐려져 있었고, 흙과 낙엽이 겹친 부분부터 물이 엉뚱한 방향으로 번졌다. 비가 오는 동안에는 온통 물이라 보이지 않던 높낮이가, 비가 멎고 나니 고인 자국으로 또렷하게 드러났다. 물은 길을 잊었다.
삽을 가져와 배수구 앞을 조금 걷어 냈더니 눅눅한 낙엽 아래에서 잔가지와 흙덩이가 한꺼번에 나왔다. 배수구 입구만 막힌 줄 알았는데 그 앞쪽 흙도 오래 눌려 단단해져 있었고, 물이 스며들 틈보다 옆으로 밀려날 틈이 더 커 보였다. 삽날을 비스듬히 넣을 때마다 젖은 흙이 무겁게 들려왔으며, 한 덩이를 털어 내면 그 아래에서 더 짙은 색의 흙이 나타났다. 괜히 넓게 파면 마당 전체가 질척해질 것 같아 우선 손바닥 두 개 정도의 폭만 건드리기로 했다. 배수구를 향해 얕은 홈을 내고, 홈 끝에 남은 찌꺼기는 작은 삽으로 긁어 모았다. 고여 있던 물은 곧장 빠지지 않고 잠시 망설이듯 흔들렸다. 문제는 경사였다.
물이 고인 자리와 배수구 사이를 눈으로만 재어 보니 거의 평평했지만, 막대 하나를 눕혀 보니 가운데가 미세하게 솟아 있었다. 비가 올 때마다 위쪽에서 흙이 밀려와 쌓였는지, 원래 그렇게 다져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솟은 부분을 얇게 걷어 내자 고인 물 끝이 조금씩 앞으로 움직였고, 탁한 표면 위로 가느다란 줄 하나가 생겼다. 그 줄을 따라 삽 끝으로 홈을 더 이어 주니 물이 갑자기 속도를 내며 배수구 쪽으로 흘렀다. 시원하다는 말보다 먼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처음부터 물이 가려는 방향을 보고 팠으면 흙을 덜 뒤집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미 젖은 장갑과 삽자루에는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고, 뒤늦게 조심해 봐야 달라질 건 없었다. 이제 물이 움직였다.
물이 빠진 바닥에는 작은 돌과 가는 뿌리가 드러났고, 그 사이로 얕은 골이 구불구불 이어졌다. 반듯하게 만들고 싶어 삽날로 양쪽 벽을 다듬었지만,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 흙이 무너져 내려 처음보다 폭만 넓어졌다. 결국 모양을 맞추는 일은 그만두고 물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큰 돌만 골라 냈다.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돌 하나가 홈 한가운데 깊이 박혀 있었는데, 주변 흙을 걷어 내도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삽 끝을 아래로 밀어 넣어 지렛대처럼 들어 올리자 돌이 툭 빠졌고, 그 자리에 고인 흙물이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그 구멍은 그대로 두면 다시 흙이 쓸려 들어갈 듯해 마른 자갈 몇 개로 채웠다. 너무 손봤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배수구 덮개 아래도 확인해야 했다. 덮개를 들어 올리자 안쪽 벽에는 젖은 흙이 얇게 붙어 있었고, 물이 빠지는 틈에는 낙엽 줄기 몇 개가 가로로 걸려 있었다. 손으로 잡아당기니 줄기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엉킨 풀과 흙이 한 덩이로 따라 나왔고, 생각보다 긴 뿌리 하나까지 딸려 나왔다. 안쪽을 깊게 건드리지는 않고 입구에서 손에 잡히는 것만 꺼낸 뒤, 물 한 바가지를 천천히 부어 흐름을 살폈다. 처음에는 흙물이 차올라 다시 막힌 줄 알았지만, 잠시 뒤 수위가 내려가며 안쪽에서 낮고 긴 물소리가 났다. 두 번째 물은 머무르지 않았다. 그 정도면 됐다.
뒤집어 놓은 흙은 그대로 두면 다음 비에 다시 홈으로 흘러들 것 같아 삽등으로 가볍게 눌렀다. 너무 세게 다지면 물이 스며들지 않을 듯했고, 느슨하게 두면 빗방울만 맞아도 가장자리가 허물어질 듯해 힘을 조절하기가 애매했다. 몇 번 눌러 본 뒤 발로 밟지는 않고 손바닥으로 표면만 고르게 쓸었다. 젖은 흙은 매끈하게 정리된 순간보다 손을 뗀 뒤가 더 지저분했고, 장갑 자국과 삽날 자국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남았다. 홈 가장자리에는 작은 자갈을 띄엄띄엄 놓아 흙이 바로 무너지지 않게 했다. 보기에는 임시로 만든 물길 같았지만 실제로도 임시가 맞았다. 비가 한번 더 와야 알 수 있었다.
정리를 마친 뒤 마당 끝에서부터 천천히 물을 흘려 보냈다. 물은 처음 파 둔 홈을 따라오다가 중간의 넓어진 자리에서 잠깐 퍼졌고, 곧 가장 낮은 쪽을 찾아 다시 한 줄로 모였다.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새는 물은 없었지만, 배수구 바로 앞에서 속도가 줄어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 부분의 홈을 손가락 한 마디만큼 더 낮추자 남아 있던 물까지 얇게 끌려갔다. 흙탕물이 빠진 뒤에는 바닥에 반짝이는 물막만 남았고, 그것도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색을 잃었다. 삽과 장갑을 씻고 돌아왔을 때는 아까 검게 고였던 자리가 군데군데 갈색으로 드러나 있었다. 아직 끝은 아니었다.
한동안 비 소식이 없으면 지금 만든 홈이 먼저 말라 갈라질 수도 있고, 다음 비가 세게 내리면 자갈 몇 개쯤은 금방 자리를 벗어날 것이다. 그렇다고 홈을 더 깊이 파거나 배수구 주변을 넓히는 일은 오늘 할 일이 아니었다. 물이 지나간 흔적을 한번 본 뒤에야 어느 쪽을 더 손봐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삽자루에 남은 흙을 마지막으로 털어 내고, 배수구 덮개가 흔들리지 않는지만 발끝으로 확인했다. 마당에는 파낸 흙 냄새가 눅눅하게 남아 있었고, 얕은 물길은 흐르지 않을 때 더 선명해 보였다. 다음 비가 오면 창밖보다 먼저 그 홈을 보게 될 듯했다. 물길은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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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멎고 나서야 보이는 높낮이, 마당 있는 집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죠. 낙엽부터 걷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