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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래 머물던 아침

새벽부터 비가 유리창을 잘게 두드렸고, 한동안 그 소리만 들으며 이불 끝에 손을 얹고 있었다. 많이 내리는 비는 아니었지만 좀처럼 그칠 기색도 없어서 방 안의 모든 물건이 평소보다 무겁게 보였다. 이런 날에는 일어나자마자 해야 할 일을 헤아리는 대신 빗소리가 몇 가지나 되는지 세어 보게 된다. 창을 바로 때리는 소리와 어딘가에 고였다가 떨어지는 소리, 바람에 밀려 비스듬히 긁고 가는 소리가 제각각이었다. 듣다 보면 시간이 늘어난다.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찬장을 열었는데 먹고 싶은 것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따뜻한 국물은 당겼지만 처음부터 무언가를 끓일 만큼 마음이 부지런하지는 않았다. 결국 작은 그릇에 마른 과자를 조금 덜고, 우유를 데워 천천히 부었다. 금방 눅눅해질 것을 알면서도 한꺼번에 붓는 편이 좋다—바삭한 부분과 풀어진 부분을 번갈아 먹는 재미가 있어서다. 숟가락이 그릇 바닥을 긁는 소리는 빗소리보다 또렷했고, 나는 그 단순한 소리에 괜히 마음이 놓였다. 별것 아닌 아침이었다. 식탁 위에 둔 시계를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숫자는 기다려 주는 법이 없었다. 어린이집 차가 오는 시간에 맞춰 서두르고 나면 아침 회의는 늘 몇 분쯤 먼저 시작되어 있었고, 제시간을 지킨 날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 화면 한쪽에 남은 시각을 볼 때마다 변명할 문장을 떠올렸다가 지웠다. 누구에게 길게 설명할 일도 아닌데 혼자서 말의 순서를 고치는 버릇만 늘었다. 오늘은 비 때문에 조금 더 늦어질까 싶었지만 그런 예상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문제는 몇 분이었다. 정리가 끝난 뒤에도 비는 여전히 같은 굵기로 내리고 있었다. 식탁을 닦다가 창 쪽이 환해진 듯해 고개를 들었는데, 구름 사이가 잠깐 옅어졌을 뿐이었다. 햇빛이 들려다 마음을 바꾼 것처럼 희미한 밝음만 남았다. 나는 젖은 행주를 펴 놓고 남은 우유를 다시 데웠다. 아까보다 단맛이 약하게 느껴져 꿀을 반 숟갈 넣었더니 이번에는 지나치게 달았다. 적당한 맛은 늘 짧다. 아 맞다, 어젯밤에 보던 드라마는 끝을 십 분 남겨 두고 멈춰 있었다. 결말이 궁금해서 틀어 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 하나가 끝까지 사과하지 않는 이유를 조금 더 보고 싶었다. 잘못을 인정하면 모든 장면이 금방 정리될 텐데, 그 사람은 자꾸 다른 말을 꺼내며 시간을 벌었다. 답답하면서도 이해가 됐다—정확한 말을 고르는 척하면서 사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순간이 있으니까. 재생 버튼을 누를까 하다가 아직은 아침과 어울리지 않는 얼굴들이라는 생각에 화면을 덮었다. 결말은 그대로 남았다. 점심에는 냉장고 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재료로 국수를 만들었다. 물이 끓는 동안 양념을 섞었는데 고춧가루가 생각보다 많이 쏟아져 설탕을 조금 더 넣고, 다시 식초를 보탰다. 덜어내면 간단했을 일을 자꾸 다른 맛으로 덮다 보니 작은 그릇이 거의 가득 찼다. 면을 건져 찬물에 헹구는 동안 손끝에 닿는 물이 지나치게 차가워서 수도를 몇 번 잠갔다 켰다. 완성된 국수는 맵고 달고 시어서 어느 맛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도 다 먹었다. 먹고 난 그릇을 바로 씻지 않고 한참동안 식탁에 두었다. 빗물이 창을 따라 내려오는 모양을 보고 있자니 길고 반듯한 줄 하나가 중간에서 다른 물방울과 만나 갑자기 굵어졌다. 아래로 흐르던 자국은 잠시 갈라졌다가 다시 붙었고, 먼저 도착한 물은 창틀 어딘가로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오래 보고도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확히 붙잡지 못했다.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조금 가라앉았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빗소리는 줄었지만 방 안에 밴 습기는 그대로 남았다. 아침에 펼쳐 둔 행주는 아직 축축했고, 책상 위 종이 한 귀퉁이도 살짝 들려 있었다. 드라마의 남은 십 분을 마저 보았는데 기다린 것에 비해 결말은 아주 조용했다. 끝내 사과하지 않던 사람은 문을 닫고 나갔고, 남은 사람은 빈 의자를 한 번 바라본 뒤 컵에 물을 따랐다. 화면이 어두워진 뒤에도 나는 다음 편을 틀지 않았다. 창밖에는 비가 거의 멎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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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빗소리수집 1일 전
빗소리를 종류별로 세어 본다는 말에 반가웠습니다. 저도 그래서 이 닉네임이에요
🍵 고요한오후 2일 전
듣다 보면 시간이 늘어난다. 이런 아침이 좋지요
🎃 호박죽 3일 전
찬장 열고 아무것도 안 떠오르는 순간까지 그대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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